베이징올림픽 훈련현장을 가다 ⑥ 배드민턴
5g.
이 ‘셔틀콕’은 때론 징글맞은 무게로 변한다. 이현일(28·김천시청)은 “너무 힘들다”며 지난해 1월 국가대표를 스스로 벗어던졌다. 한때 세계 1위까지 올라 5g를 갖고 놀던 그였다. “‘왜 이렇게 안되지?’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공이 원하는대로 가지 않아요.” 방황은 5개월 걸렸다. 그는 후배들 앞에서 약속했다. “다시 기회를 주겠니? 날 믿어줘라.”
‘5그램과의 지독한 싸움’
이현일은 지난달 27일 코리아오픈 남자단식 결승에서 세계 1위 린단(중국)을 꺾었다. 김중수 감독은 “올림픽을 향한 절박한 마음 덕분”이라 했고, 이현일은 “흐트러지지 않는 평정심이 생겼다”고 했다. 셔틀콕은 제 가벼움을 쉽게 허락하는 법이 없다.
29일 오후 전라도 장흥 실내체육관. ‘5g과의 지독한 싸움’을 위해 남녀배드민턴 국가대표 40명이 모였다. 코리아오픈 휴가는 하루로 끝났다. 밖엔 눈보라가 몰아쳤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말했다. “올해 출발은 좋다.” 대표팀은 2006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서 ‘노골드’ 성적을 냈다. 하태권 김동문 이동수 라경민 등이 은퇴한 세대교체 후유증이었다. 그러나 세계 8위 이내 강자가 다 나온 코리아오픈에서 남자단식과 혼합복식(이용대-이효정) 우승을 일궜다.
감독은 “잘했다”는 칭찬을 그쯤에서 거뒀다. “자만해선 안된다. 지나간 경기는 다 잊자.” 줄줄이 예정된 세계단체선수권 아시아 예선(2.19~24·베트남) 독일그랑프리(2.26~32일) 전영오픈(3.4~9) 스위스오픈(3.11~16)에서 점수를 부지런히 쌓아야 한다. 베이징올림픽은 5월1일 발표하는 5개 종목별(남녀단식·남녀복식·혼합복식) 세계 16위 안에 들어야 나갈 수 있다. 시드배정이 유리한 8위 이내라면 더 좋다.
정식종목이 된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 2004 아테네올림픽까지 금5·은5·동3개를 딴 배드민턴은 베이징에서 최소 1개 금메달을 노린다. 남자복식 이용대-정재성(세계 6위) 이재진-황지만(8위), 여자복식 이경원-이효정(4위), 남자단식에선 세계 1위 린단 ‘천적’ 박성환(13위) 이현일 등이 메달권에 근접해있다. 김중수 감독은 “세계 8위까지는 종이 한장 차이”라고 했다.
여자복식을 뺀 4개 종목 세계 1위인 중국의 전관왕 도전은 큰 걸림돌이다. 김 감독은 “중국이 선심의 90%를 자국출신으로 채우려고 해 반발을 사고 있다. 주심까지 자국으로 구성하려다 세계연맹의 제지를 받았다”며 중국의 안방텃세도 경계했다.
아테네올림픽에서 남자단식 은메달을 딴 주장 손승모(28·밀양시청)는 “친구인 현일이가 바닥에 내려갔다 다시 올라왔으니 이번에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손승모는 점프와 스텝이 많은 종목 특성상 뒷꿈치 수술을 받은 탓에 세계 90위까지 처져 올림픽 출전이 어렵다. 스피드 보완이 과제인 이현일은 “이번엔 1회전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선수의 장·단점을 파악할 것”이라고 했다. 아테네 16강 탈락이 준 교훈이다.
감독은 이날 자율훈련을 허락했고, 선수들은 재미삼아 6대6, 3대3 게임을 했다. 순간속도 시속 300㎞ 안팎의 셔틀콕이 오가자, 승부욕이 발동한 선수들의 얼굴에 웃음이 적어지더니, 그 열기에 눈보라도 그새 자취를 감췄다.
장흥/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중국 출신 리마오 한국코치 “내 선수들이 중국 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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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7일 코리아오픈 배드민턴 남자단식 결승에서 이현일과 경기를 벌이던 중국 린단(오른쪽)이 심판판정에 항의하다 리마오(왼쪽) 한국팀 코치에게 달려들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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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코리아오픈 남자단식 결승. 마지막 3세트 21-21에서 이현일의 스매싱이 ‘인(IN)’으로 선언되자, 세계 1위 린단이 심판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라켓을 머리가 벗겨진 한국 코치에게 집어던지며 대들었다. 린단의 거친 행동을 두고 중국에선 “그 코치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바로 한국남자단식 전문코치인 리마오(50)다. 리마오는 1990년대 중국배드민턴 남자단식 코치를 지냈다. 리마오는 린단의 스승인 현 중국대표팀 총감독 리용보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중수 한국 감독은 “중국 선수들의 스타일을 배우고 대비하기 위해 1999년 한국으로 초빙한 코치”라고 했다. 리마오는 2004년까지 한국 남자단식을 지도하며 손승모의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이후 말레이시아대표팀에서 활동한 그는 지난해 1월부터 베이징올림픽이 끝나는 8월까지의 단기계약(월봉 5000달러)으로 다시 한국에 왔다. 이현일은 코리아오픈 우승에 대해 “리마오가 (린단의 타이밍을 뺏기 위해) 짧게 끊어치라고 한 게 흐름을 바꿨다”고 했다.
베이징에서도 ‘리마오 효과’를 기대하는 김중수 감독은 “리마오는 자기가 가르친 한국 선수가 세계 1위인 중국 선수들을 꺾는 게 바람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장흥/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