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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드민턴의 간판스타 이현일이 지난 1월 10년 동안 정들었던 태극마크와 이별했다. 서울체고 2학년 때 국가대표로 뽑힌 이현일은 왼손잡이 단식 전문으로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배드민턴을 대표했다. 그러나 복식에 비해 선수층이 얇은 단식에서 자신에게 집중된 관심과 기대를 견디다 못해 “솔직히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국가대표로 뛰고 싶지 않다”는 말과 함께 태릉선수촌을 떠났다.
실제로 한국배드민턴은 여자 방수현과 남자 이현일 이후 이렇다 할 단식 전문선수들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단식 선수들을 전담 지도하기 위해 중국과 말레이시아 국가대표를 지도한 리마오 코치를 영입했지만 이현일의 공백에 따른 대표팀의 전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배드민턴 관계자들이 이현일의 뒤를 이을 유망주 찾기에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에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국 셔틀콕의 기대주 신백철이 3월 12일(한국시간) 보트롭에서 막을 내린 2007 독일주니어오픈선수권대회 남자 단식 정상에 오른 것이다. 지난해 같은 대회에서 허벅지 근육파열로 8강에 오른 것에 만족하고 대회를 포기해야 했던 신백철이기에 이번 우승은 더욱 값진 결과다.
신백철이 배드민턴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 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배드민턴 라켓을 잡고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중학교 1학년 때 155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키 때문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중3에서 고1 사이에 키가 부쩍 커 고3인 현재는 185cm의 큰 키가 됐다. 키가 갑자기 커 무릎 통증 때문에 운동을 많이 못 한 적이 있을 정도로 키가 쑥쑥 자랐다. 키가 크기 시작한 고1 때부터 스매싱이 강해지고 작은 키 때문에 더 빨리 더 많이 뛰어야 했던 체력적인 부담도 줄면서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게 됐다.
신백철이 처음부터 단식 전문선수로 훈련했던 건 아니다. 중고교 선수들은 세부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단식과 복식을 모두 뛰는 게 일반적이다. 신백철은 복식 파트너가 운동을 그만두면서 자연스럽게 단식선수가 됐다. 중학교 때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해 빠른 동작을 수없이 연습했던 게 몸에 익은데다 185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스매싱이 더해져 단식선수로는 이상적인 경기력을 지닐 수 있게 됐다.
이런 강점을 지닌 신백철은 지난해 1월 삼성전기배 주니어단식 최강전 남고부 1학년 경기에서 우승하면서 고등부의 신백철 시대를 여는 듯했다. 그러나 대회 직후 출전한 2006 독일주니어오픈선수권대회에서 큰 부상을 당해 8개월 동안 라켓을 잡지 못했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 배드민턴 라켓과 셔틀콕에 열정을 불태웠던 신백철에게 반년이 넘는 통원 치료는 큰 고통이었다. 운동을 하지 못하는 공허함과 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부상 앞에 쓰러질 수는 없었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대회가 있을 때마다 경기장을 찾아 주는 부모님이 곁에 있고 함께 땀을 흘리며 훈련하기를 기다리는 코치 선생님과 팀 동료들 그리고 체육관이 있었다. 신백철은 강한 의지력으로 부상을 딛고 재기에 성공했다.
부상이 재발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여전히 남아 있고 지난해 전국체육대회 남고부 단체전 2회전에서 탈락하는 아픔도 겪었지만 신백철의 재기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리고 2007년 독일주니어오픈 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정상에 섰다. 신백철은 세계 정상을 향해 다시 네트 앞에 선다.
신백철
생년월일 1989년 10월 19일
신체조건 185cm/ 70kg
약력 김포 월곶초-광명 하안중-광명북고 3학년
SPORTS2.0 제 44호(발행일 3월 26일) 기사
이유미(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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