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HS 비디오 테입이 폭넓게 유통되었던 일본이나, 지금도 가지각색 온갖 영화들이 DVD로 쿡쿡찍혀져 나오고 있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옛 한국영화를 볼 방법은 별로 없습니다. 상당수 영화들은 한국에는 보존용 필름자료 조차 없어서, 외국에서 발매된 DVD를 아마존에 주문해서 봐야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때문에 몇몇 "거장"이라고 책이나 기사에서 언급되는 사람이 감독한 영화들이, 별로 본 사람이 없으니, 그저 그 이름만 인용에 재인용을 거듭하면서, 괜히 필요 이상으로 걸작이나 명작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잦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한 나라이니,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배포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일정 시간이 지난 영화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판권을 사들여서 무료화 한뒤, 한국영상자료원이나 하다못해 클럽박스를 통해서 유통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http://archive.org 같은 사이트에서 상당수의 흘러간 옛 미국 영화들을 그런식으로 볼 수 있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 모양새를 보면, TV에서 "특선방화" 류의 프로그램 편성이 사라진 뒤로 한국영화들은 점점 잊혀져 가기만 하는 듯 합니다. 그나마 EBS 일요일(!) 심야 시간대 방송에서 볼만한 영화를 건질 수 있을 뿐, 케이블 TV 심야 방송도 워낙에 노출 장면이 많은 영화 위주로 편중해 편성하는 통에 아무래도 흘러간 옛 한국영화들을 다양하게 접할 기회는 부족한 듯 합니다. 특히나, 한국 영화가 최근 몇년간 상당한 질적인 성장을 한 것과 비교해 보면, 워낙 빠지는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이 글에서는 흘러간 한국 영화 중에서, 또 그 중에서 예고편 동영상을 제가 인터넷으로 입수할 수 있었던 것 중에서, "이상하고 신비로운 것" 위주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흘러간 영화라고는 하지만, 대체로 겨우 20년정도 지난 영화들입니다. 우선 첫번째로 액션 영화 10편을 소개해 봅니다. 장차 "공포"편, "코메디"편 도 이어갈 것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희귀한 영화보다는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봤건만 어느새 잊혀진 영화들 위주로 소개하겠습니다.
일단, 첫편은 예고편 시작하는 장면부터 단박에 그 신비로운 느낌으로 우리를 압도할 수 있는 영화를 골라 보겠습니다.
1. 평양 박치기 (1983)
이 영화 예고편 첫 장면의 파괴력은 가히 파천황입니다. 예고편을 끝까지 보신다면, 영화 예고편 속에서 이야기하는 이 영화를 감독한 감독의 이름을 한 번 유심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명불허전 이군. 하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남기남 감독은 1980년에 코메디언 이주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활극 "평양 맨발"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중저예산으로 급히 만들었지만, 이주일의 개인기와 가벼운 내용이 나름대로 표를 끌어모아, 제작비에 비해서는 공전의 성공을 거둔 바 있습니다. 바로 이 "평양 맨발"의 영화를 다시 한 번 누려 보려는 영화가 "평양 박치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대근과 백일섭으로 일제시대가 끝날 무렵을 배경으로 일본인, 일본인 앞잡이 원수와 박치기 하면서 싸우는 내용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나쁜 일본인과 싸우다가 이대근이 그만 일본인을 죽이게 되는데, 이 이대근을 변호하기 위해서 친구인 백일섭 가족이 고통을 받습니다. 해방직후, 이번에는 백일섭 가족이 위기에 놓이게 되자, 이대근이 은혜를 갚기 위해 처절하게 박치기로 싸우게 됩니다.
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이대근은 "뽕"과 "가루지기"로 일대파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완전히 그쪽으로 굳어집니다. 이 영화, "평양 박치기"는 바로 그 이전시절까지 이대근이 연기했던 모습의 거의 마지막 정도라 할만합니다. 이대근은 거칠고 뚝심 넘치는 주먹꾼을 격하게 과장해서 연기하는데 능했고, 때문에 "시라소니"나 "실록 김두한"으로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이대근 하면, 80년대 후반 영화들이 거의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잡을 정도에 이르는 바람에 어찌보면 이대근 스스로는 너무 성공하는 바람에 도리어 백일섭만큼 장수하는데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에 같이 출연한 백일섭이 부드럽게 그 모습을 변화시키면서 아직까지 활동하는 것과 무척 대조적입니다. 물론, 이대근 역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기본기가 있고, 인상이 뚜렷한 배우이기에 꾸준히 활동하고 있기는 합니다.

(이 영화속, 액션스타 시절이 끝나가던 무렵의 이대근)
"평양 박치기"에서 보듯, 한국 영화에서 심심하면 사용하는 것이 이처럼, 애국심 내지는 민족주의 입니다. 한국 영화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본인 악당들은 최근까지도 무척 자주 등장했습니다. 아무 상관 없는 주제로 출발한 코메디물이나 공포물이다가도 끝날 때가 되면, "그렇지만 우리의 양아치 주인공들은 간첩/일본인/청나라 사람이 우리민족을 핍박하는 것을 보자 분노해서 정의를 위해 싸운다"류로 끝나는 것이 넘쳐 납니다.
그렇다면, 전혀 한국 민족주의와 상관 없을 것 같은 소재를 한 번 떠올려 봅시다. 한국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외세나 외국 문화의 상징이라 할만한 것 말입니다. 예를 테면,
"햄버거" 는 어떻겠습니까?
그리하여, 다음으로 소개해 드리는 영화는, 이상하고 신비롭게도, 무려
햄버거를 한국 민족주의와 결합 시킨 영화이니, 그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2. 햄버거 쟈니 (1988)
- 주제곡을 귀기울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주제곡의 가사를 자세히 들어보시면, 햄버거와 한국 민족주의가 이상하고도 신비롭게 결합되는 그 오묘한 경지를 엿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바로 제목처럼, 이 영화는 당시 토크쇼로 인기를 구가하던 쟈니 윤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이며, 샌프란시스코를 무대로, 백인 애인에게 마음이 안흔들리고 한국인 애인에게 쟈니 윤이 충실하게 붙어 있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주인공들이 햄버거를 팔아서 미국사회에서 성공하며 한국인의 긍지를 드높이는 결말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당시 미국이민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 영화 중에 보면, 타락과 방종의 상징으로 백인이나 흑인 친구가 등장하고, 이 사람을 걱정하는 부모형제나 한국계 친구가 나오는 영화 참 많습니다. 이런 오묘한 인종적인 전통은 아직까지도 TV극 작가사이에 꽤 남아 있습니다. 영어로 유창하게 외국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실장님"들을 보면, 대부분 외국에서 사귄 이성친구들은 양아치끼가 다분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이 소박하고 가난한 진짜 실장님의 사랑인 한국계 주인공과 대조를 이루는 식으로 극을 꾸미는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처음에는 이렇게 사랑 이야기 비슷하게 나가다가 나중에는 갑자기 샌프란시스코 깡패들과 액션 결투를 벌이는 것으로 치달으면서 이국적인 액션 영화가 되려 했습니다.
역시 뭐니뭐니 해도 지금 보면, 이 영화의 백미는 주제곡 입니다. 주제곡 가사는 형용할 수 없는 영혼의 얼씨구 절씨구가 있습니다.
"그대 빈손으로 왔었지
쟈니~"
"그대 맨발로 뛰었지
쟈니~"
"태평양 검푸른 바다를 건너~ 금문교 바람을 힘차게 갈랐지~"

사나이 가슴에 비가 내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햄버거 쟈니"라는 영화제목은 확실히 기이한 것이기는 합니다만, 어째 영화를 볼 마음을 내키게하는 제목은 아닌듯 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특이한 제목, 좀 더 이상하고 신비로운 제목을 가진 액션 영화는 없겠습니까?
저는 그 제안으로, 액션 영화 제목치고, 그 제목이 화끈하기로, 청양고추 액기스 같은, 영화 한 편을 꼽습니다.
- 바로 제목이 없는 영화 입니다.3. 無 (1990)
제목이 공식적으로 기록되기는 "無" 입니다만, 역시, 이 영화를 만들며 노린 것은 "제목이 없는 영화"라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인생무상의 내용도 담아보자는 철학적이고 이상하고 신비로운 면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몇 편 비슷한 영화를 찾아 볼 수 있는 바로 "나한일 영화"의 일종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한일은 검도를 잘 하면서, TV를 통해서 얼굴도 많이 알렸기에, 주연과 조연을 맡아서 주로 좀 어두운 액션 영화에 등장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은 이상하게 기묘하게 분위기와 영화의 재미가 비슷한 수준으로 통일되는 듯하다는 인상을 받아 왔습니다. 아마 TV시리즈인 "무풍지대" 이후로 이런 영화들이 너댓편쯤 있을 것입니다. 코메디로 나온 비교적 근작인 "엑스트라" 같은 영화도 오묘하게 "나한일 영화" 스러운 감흥이 서려 있었습니다.
"無"는 그야말로 정통 나한일 영화의 길을 걷습니다. 마약 범죄 조직과 엮이고 손씻고 살려는 사람도 나오고, 사랑하는 여자 일도 얽히고, 결국 "나한일이 목숨걸고 다 죽인다"로 흘러가는 이야기 입니다. 영화 예고편에도 나오듯이, 나한일은 칼싸움 장면은 잘 찍었는데, 총싸움 장면은 무척 엉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총싸움 장면을 관찰해 봅시다. 총싸움 할 때 나오는 사람들이 입는 정장과 점퍼의 비율로 추정해보면, 80년대말에 유행한 홍콩 느와르 영화의 총격전 장면을 모방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고 신비롭게도, 하다보니 그 무한총알 총격전의 황당한 느낌은 더더욱 강조된 듯하게 보입니다. 주인공이 대강 허공에다 대고 드르륵 휘갈기면, 총알이 멀티 타게팅이 되는 레이저 정밀유도로 스스로 찾아가서 악당의 심장마다 다 인사를 해 주는, 그 공허한 느낌이, 아주 잘 눈에 뜨입니다. 그런 별 표현할 필요 없는 것을 표현해버린 탓인지, 이 영화는 실패를 거두었고, 당시에도 "사람들이 별로 안보는 재미없는 액션 영화"로 낙인 찍히는 운명을 걸었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런 점에도 정통 나한일 영화 스러움이 서려 있다 할 것입니다.

(나한일: 스티븐 시걸이 부럽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도들은 흥미롭습니다. 경쾌한 자동차 추격 장면에, 호방한 보트 추격전 장면은 나름대로 8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들의 전세계적인 영향을 어떻게 적용해볼 수도 있었지 싶다... 하는 마음은 갖게 해 줍니다.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문종금은 이 영화가 데뷔작 쯤 되는데, 이 사람이 감독을 맡은 영화 중에 그나마 가장 비디오 테입이 많이 뿌려져 있는 것이 1991년작 "전국구" 입니다. 한국영화에 관심 많았던 영화팬들은 대실패작, "싸울아비"의 감독으로 기억되기도 하며, 이 "싸울아비"가 마지막 감독작입니다.
홍콩 영화의 영향을 받은 한국 영화야 60년대 무술 영화부터 21세기의 "어린신부"까지 그야말로 그득그득합니다. "홍콩 액션 영화" 전성기였던 80년대 후반의 홍콩 영화 영향을 거의 직통으로 받은, 아류작, 모방작도 꽤 많습니다. 무술영화처럼 아예 작정하고 비슷한 배우들을 데려와서 유사품을 제조한 것도 있고, 그게 아니라 분위기나 기술을 모방하는데 더 중점을 둔 "無" 같은 영화들도 꽤 많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한편 꼽는다면, 바로 다음 영화 입니다.
4. 특명 미녀군단 (1992)
예고편에 나오듯이, 이 영화에 나오는 미녀군단은 다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강리나 - 사나운 야생마 !"
"세라 비세트 - 성난 황야의
이글 !"
"마리 토레도 - 지칠줄 모르는
암사자 !"
"채은주 - 발톱을 세운
암코양이 !" (... 암사자 다음에 나오니 너무 약해 보입니다.)
"네리사 코젯 - 정글 속의 검은 표범 !"
"특명 미녀군단"은 기본적으로 "여자들이 처절하게 발길질하고 총질하는 영화"로 공전의 성공을 거둔 "예스마담" 시리즈의 영향 아래 나온 영화입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 영화 내용을 보면, 이 영화는 정통파 "여자 감방(Women in prison) 영화" 입니다.
"여자 감방" 영화는 그 자극적인 내용과 다소간 변태적인 소재를 도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찌감치 영화의 소재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미국에서 펄프 잡지의 흥미위주 소설 소재로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한국에서도 "인신매매단이 여자를 잡아 가둬서..."로 시작하는 괴기스러운 뜬소문들은 아주 옛날부터 여성잡지에 단골로 실리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해서, 1950년대 부터 영화들이 나왔고,1971년작 "나치 일사 Ilsa, She-Wolf of the SS"가 나온 후부터는, 아예 굳건하게 "자극적인 중저예산 영화"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영화의 내용은 착하고 가녀린 여자 주인공들이 감옥에 갖혀서 고통을 받고, 고통을 받는 과정에서 독해지게 되고, 결국 감옥을 부수고 난장판을 벌이거나, 피비린내나는 복수를 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액션 영화라면 감옥을 부수고 나와서 벌이는 난동에 초점을 맞추고, 그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있는 영화라면, 감옥에서 주인공들이 고통 받는 부분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이런 영화는 이런류의 영화를 진부하고 뻔뻔하게 만드는 모습에 대한 패러디로 "헐리우드 대로" 같은 곳에서 언급되기도 했고, 최근에도 "그라인드 하우스" 같은 곳에서도 인용되고 있으며, "시카고"의 한 장면이나, "네이키드 웨폰 Naked Weapon" 같은 영화에 정통파 모습 그대로 내려오고 있기도 합니다.
"특명 미녀군단"은 후자의 탈출후에 복수하고 총싸움 하는 부분에 훨씬 더 초점을 맞춘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영화 내용은 80년대에 간간히 나오던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베트남에 잘못 발이 묶여 강제 수용소에 있다가 겨우 탈출하는 것이 도입부입니다. 이후 주인공들은 행복한 날만 계속될 줄 알았지만, 수용소 동료 한명이 범죄 조직에 당하게 되고, 그 복수로 수용소 동료들이 다시 모여 거대 범죄조직을 다 박살내는 것이 영화 끝입니다.
로저 코먼 제작 영화 중에도 이 영화처럼 동남아시아 혹은 일본점령지를 무대로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영화와 그런 영화에 영향을 받은 홍콩의 여자 감방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을 그대로 배워왔습니다. 주인공들이 기관총 쏘는 자세나 수류탄 던지는 순간 같은 것들은 그대로이고, 특히, 짚과 나무로된 감시 초소 폭파시키는 장면은 아주 자주 나오던 모습입니다. 저 짚과 나무로된 감시 초소는 꼭 폭파되기 위해 건설된 듯한 느낌마저 납니다. 뭐, 영화 찍을 때는 폭파시키려고 건설했겠습니다만.
당연히 이 영화는 아리따운 자태를 과시하는 배우들이 총질하고 발길질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고로, 영화 주인공으로 80년대 말에 그 외모로 중저예산 영화에서 급등하는 인기를 누렸던 강리나가 나옵니다. 마침 강리나는 "우뢰매" 시리즈의 데일리로 유명한 천은경과 "눈물의 웨딩드레스"에서도 베트남 이야기를 연기한 적이 있어서, 어딘지 잘 어울려 보입니다.

(특명 미녀군단의 미녀군단들)
강리나는 지금은 무슨 전설급이 되어 있는 "크라이막스 원"과 "변금련 2" 등에서 출연한 부류의 모습이 워낙 강렬하고, 마지막 영화인 "알바트로스" 역시 바로 그 알바트로스인 까닭으로 좀 비하되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쨌건 간에, 이 "특명 미녀군단"에 나올 때만 해도, 아름다운 모습을 과시하면서도, 누구보다 독특한 개성을 얼굴에 담고 있었고, 나름대로 뛰고 발차기 하는 액션 장면도 꽤 잘 소화하고 있습니다.

(강리나가 가장 유명세를 누리던 시절)
"특명 미녀군단"은 비는 구석이 많고 트래쉬 무비의 향취가 풍기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호기심 생기게 하는 장면, 어쨌거나 안지루하고 신기한 장면들이 종종 나오는데다가, 강리나가 석궁을 발사하는 장면 같은 것은 꽤 멋있어서, 심야 케이블TV 영화로 보면 잊혀지지는 않을 영화입니다. 아마 이런 영화가 80년대 중반이나, 70년대말에 나왔으면, 흥행작이나 명작, 걸작 소리도 괜히 많이 들었지 않나 하는 망상에 빠져 보기도 합니다. 하기야, 그만큼, 아류작이 아닌 창작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는 반증이겠습니다만.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사람은, 그 바닥에서 아주 유명한 바로 "조명화" 입니다. 우뢰매 4,5편 박중훈 나오는 "바이오맨" 감독등으로 친숙하기도 하고, 다른 방향으로는, 정사수표7편, 8편으로 이름을 찾아 볼 수 있기도 한 사람입니다.
강리나는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지금은 배우를 접고 어느새 17번째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2007년 3월 28일에서 4월 3일까지 였다고 합니다. 강리나도 어느새 43세이니, 세월이 바뀌니 많은 것이 바뀐다 싶습니다.

(2007년 4월 씨네21 인터뷰에 실린 현재의 모습 - 별로 안변했습니다.)
그런즉, 이번에는 반대로, 지금 나오는 배우들 중에 정말 액션 영화 여자 주인공으로 전혀 안어울린다 싶은 사람을 한 번 찾아 보겠습니다. 정말, 하나도 안어울리는 배우를 한 번 떠올려 봅시다. 마치 아이스크림 케익에 고추장 발라 먹는 것 만큼 액션 영화 주인공에 안어울리는 배우가 누가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이 분은 어떻겠습니까. (박선영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하여, 다음으로 소개해 드리는 영화는 바로 박원숙이 젊은 시절에 악당을 두들겨 잡는 액션 영화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이상하고 신비로운 영화입니다. 이 영화 속에서 박원숙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출연합니다.

5. 여호신 (1980)
예고편에 나오는,
"그 섹시한 몸매- 디스코-"하는 대사는 하나도 안느끼한 목소리면서도, 신비로운 느끼함이 일대를 이라크 유전지대처럼 만들어버릴 가공할 위력이 있으므로 주의하기 바랍니다. 그에 비하면,
"내 이름은 현동철. 일명
검은테로 통하지."
"내 가장 존경하는 형님의 원수를 갚고 가야지.
이야아아아아아아!"
정도의 대사는 그저 치즈 케익위에 버터 바른 뒤 올리브유 뿌리는 정도 입니다. 여기에 기이하게 깔려드는, 70년대 후반 디스코 음악을 어림없게도 전통 트로트 창법으로 구성지게 불러젖히는 노래 수법은 과연 오묘한 향취를 즐길만합니다.
이 영화는 1976년작인 "여신탐"의 영향권 안에 있는 영화로, 비슷한 70년대 후반 국제 범죄 조직을 상대로 하는 홍콩 액션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입니다. 그런 홍콩 영화들은 "국제 범죄 조직"이 나오는 만큼, 한국 영화사들의 제작진이 참여할 기회가 이래저래 자주 있었고, "인터폴" 같은 대표작을 필두로 꼽을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자체적으로 비슷한 영화를 찍게 되는 수준에 이르러 영화들이 몇편 나왔는데, "여호신"도 바로 그런 영화 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마약조직과 그 조직과 관계를 맺은 마약 중독자 등등이 배반하고 협박하고 하다가 막판에 경찰들에게 일망타진 되는 것입니다. 박원숙은 이 영화에서 무려
양쪽으로 머리를 묶은 어린 소녀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 엄청난 대결전에 어물쩡 끼어든 철모르는 어린애를 연기하면서, 좀 웃겨주고, 관객이 공감하게 해주고 하는 역할도 하는 것입니다.
"한지붕 세가족" 순돌이 어머니 이후에 워낙 인상이 강하게 굳어져서 그렇지, 이 영화에서 박원숙은 훌륭하게 제몫을 다합니다. 특히, 박원숙은 자기 목소리를 직접 영화에 녹음했습니다. 당시 대다수 배우들이 그냥 성우들에게 자기 목소리 연기를 하게 한 데 비해서, 박원숙은 당시부터 TV에 나오던 익숙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가 자기 목소리 연기를 녹음해 넣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 좀 어려운 역할인데도, 영화의 가치 이상으로 잘 녹아든 연기를 멋지게 보여줍니다.
박원숙은 편안한 연기력과 특유의 진실성 넘치는 코메디 연기력 때문에, 많은 영화의 조연을 아주 잘 연기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이보희가 나온 "어을동", 김부선이 나온 "애마부인3" 등의 영화에서도 출연해 얼굴을 보였습니다.

(70년대 코카콜라 광고를 맡은 박원숙. 그러니까 2000년대초의 한은정 급인 것입니다.)
한편, 이 영화의 감독은 최영철이 맡았는데, 이 양반은 1992년작 "백백교" 로 트래쉬 무비에 일가견이 있음을 보이기도 했고,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영화인 이상하고 신비로운 영화 "삿갓 쓴 장고"의 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 "삿갓 쓴 장고"는 케이블TV 방영이 비교적 자주 되었기에 꽤 많이 알려진 영화일 것입니다. 최영철 감독은, 반공물인 "7호실 손님", "특명 8호" 같은 영화의 감독으로 기억하시는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용 나오는 특수촬영 영화인 "용왕삼태자"의 각본을 맡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최영철은 1976년에 "킹콩의 대역습 A*P*E"의 한국쪽 감독을 맡았습니다. 너무나 악명높은 이 영화는 트래쉬 무비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대졸작이며, 덕분에 국내에서도 누차례 TV나 잡지를 통해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 이상하고 신비로운 한국영화의 세계 (액션편2) 에 계속됩니다. )